정엘칼럼
한국 부동산 보유세 논란과 조세 저항의 이유
한국 보유세의 역설: "낮다"는 정부와 "악랄하다"는 국민, 무엇이 진실일까?
한국 보유세의 역설: "낮다"는 정부와 "악랄하다"는 국민, 무엇이 진실일까?
최근 이재명 전 지사를 비롯한 정치권에서 "한국의 보유세는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며, 많이 사 모아도 별로 부담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오며 보유세 인상 논의가 공식화되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선진국 수준의 현실화'를 외치지만, 정작 고지서를 받아 드는 국민들의 반응은 차갑습니다. 소득은 제자리인데 집값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세금이 몇 배씩 뛰는 현실 앞에서, 국민들은 이를 '정책'이 아닌 '징벌'로 느끼고 있습니다.
왜 정부는 "보유세가 낮다"고 말하고, 국민은 "보유세가 악랄하다"고 울부짖는 것일까요?
이 간극 속에 숨겨진 '보유세의 역설'과 우리 부동산 세제의 일그러진 단면을 짚어보겠습니다.
통계의 함정: 보유세는 OECD 평균 이하, 거래세는 4배 이상
정부가 보유세 인상의 당위성으로 내세우는 근거는 명목 GDP 대비 부동산 세수 비중입니다. 보유세만 떼어놓고 보면 한국은 분명 OECD 평균보다 수치상 낮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는 전체 부동산 세금 구조의 절반만 보여주는 '통계의 함정'입니다. 부동산 세금은 취득 시의 취득세, 보유 시의 재산세·종부세, 그리고 매각 시의 양도소득세를 모두 합쳐 평가해야 합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15년 기준 자료는 우리 세제의 기형적인 구조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한국은 보유세가 적은 나라가 아니라, 거래세가 지나치게 높은 나라입니다. 보유세는 올리면서 거래세는 그대로 두거나 오히려 강화하는 정책은 국민에게 '살 때도, 가지고 있을 때도, 팔 때도' 퇴로 없는 세금 폭탄을 투하하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거래세가 OECD 평균의 4배에 달하는 상황에서 보유세까지 급증하면, 이사 가고 싶어도 세금 때문에 못 가는 '매물 잠김(Market Lock-in)' 현상이 발생하여 시장의 선순환이 완전히 차단됩니다.
현금 흐름의 부재: 미실현 이익에 매겨지는 세금의 공포
보유세가 유독 조세 저항이 큰 이유는 취득세나 양도세처럼 '행위'나 '실제 소득'에 기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래세는 돈이 오가는 시점에 발생하지만, 보유세는 평온한 일상 속에 예고 없이 날아드는 경제적 사형선고와 같습니다.
"집값이 올랐다고 해서 그 옳은 집값이 내 통장으로 들어왔을까요? 아닙니다. 내가 집을 팔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통장에는 현금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내가 살고 있는 집인데 평가액만 올랐다는 이유로 세금이 올라가는 구조가 바로 보유세입니다."
보유세는 실현되지 않은 '장부상 이익'에 대해 매년 현금 납부를 요구합니다.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한국 가계의 특성상, 손에 쥐는 현금은 없는데 세금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는 가계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줍니다.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자산 가치 평가액만으로 세금을 매기는 방식은 납세자에게 견디기 힘든 공포로 다가옵니다.
1주택 은퇴자에게 집은 '투자 상품'이 아닌 '삶의 터전'이다
이러한 세제의 비정함이 가장 잔인하게 드러나는 곳은 고령층과 은퇴자들의 삶입니다. 20~30년 전 마련한 집 한 채에서 평생을 살아온 이들에게 집은 시세 차익을 노린 '투자 상품'이 아닙니다. 자녀를 키우고 평생의 헌신을 일궈온 '삶의 궤적'이자, 노후를 지탱하는 유일한 '안전판'입니다.
부동산 투기를 한 적도 없고 그저 오래 살았을 뿐인데, 주변 집값이 올랐다는 이유로 국가가 매년 더 많은 세금을 요구하는 것은 "이 집에서 나가라"는 압박과 다름없습니다.
평생 성실히 세금을 내며 살아온 국민이 노후에 자신의 집에서 쫓겨날 위협을 느껴야 한다면, 그 세제는 정의로움을 잃은 것입니다. 1주택자에게 주거는 기본권이며, 이를 징벌적 과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국민 정서와 심각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세금 폭탄: 공시가격, 비율, 세율의 3중주
보유세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세금 증가 폭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보유세는 집값 상승률에 따라 완만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다음의 세 가지 변수가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공시가격 상향: 세금을 매기는 기준이 되는 집값 자체를 올림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 세금을 매기는 과세표준 비중을 확대함
세율 상향: 적용되는 세금 비율 자체를 인상함
이 세 가지 요소가 동시에 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 세금은 단순 합산이 아니라 **'복리적 폭발(Synergy Effect)'**을 일으킵니다. 어제까지 평범한 1주택자였던 이가 갑자기 고가주택 보유자로 분류되어 세금이 몇 배씩 튀어 오르는 상황에서 납세자는 합리적인 자금 계획을 세울 수 없습니다. 국가가 내 주머니에서 얼마를 가져갈지 가늠할 수 없을 때, 조세 저항은 극대화됩니다.
결론: 세제 정상화의 조건, '보유세 인상'보다 중요한 것
물론 보유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재산세는 도로, 학교, 공원 등 우리 공동체의 인프라를 유지하는 소중한 재원이며, 공공의 노력으로 상승한 부동산 가치의 일부를 사회로 환원하는 측면도 분명 존재합니다.
문제는 '균형'과 '속도'입니다. 진정한 세제 정상화를 원한다면 해외의 보유세 비중만 파편적으로 가져올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낮은 거래세 구조도 함께 도입해야 합니다. 미국 등 선진국처럼 보유세가 높은 나라들은 대신 거래세 문턱을 낮춰 국민의 주거 이동을 보장합니다.
정부가 진심으로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바란다면, 보유세를 올리는 만큼 취득세와 양도소득세는 과감히 낮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장에 매물이 돌고 국민의 세부담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조절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져봅니다. 집을 사는 순간부터 보유하고 파는 순간까지, OECD 평균의 4배에 달하는 거래세와 미실현 이익에 대한 무거운 보유세를 모두 감내해야 한다면, 그것을 과연 '정의로운 세제'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국민이 체감하는 것은 '정상화'가 아니라 '끝없는 세금의 침탈'일 뿐입니다. 정책은 통계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가 짓누르는 국민의 고단한 삶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