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엘칼럼
[정엘칼럼] 물려줄 것은 주식이 아니라 신뢰다
지분 이전이 끝나도 승계는 끝나지 않는다. 거래처와 직원, 은행이 후계자를 인정하기 전까지 승계는 미완성이다.
승계 실무의 상당 부분은 주식을 옮기는 기술이다. 언제, 어떤 방법으로, 얼마의 세금으로 지분을 넘길 것인가. 물론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지분 100%가 넘어간 뒤에도 승계가 실패하는 회사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본다. 등기부와 주주명부는 바뀌었는데, 회사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자산이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를 지탱하는 것은 장부 밖에 있다
수십 년 된 회사의 진짜 자산은 재무제표 바깥에 있다. 어려울 때 물건을 먼저 내어주는 거래처의 믿음, 오너의 말 한마디에 움직이는 조직의 응집력, 위기 때 만기를 연장해 주는 금융기관의 신용. 이것들은 모두 창업자 개인에게 쌓인 신뢰이지, 주식에 붙어 있는 권리가 아니다. 주식은 하루에 넘길 수 있지만 신뢰는 이전 절차가 따로 없다. 후계자가 같은 신뢰를 스스로 다시 쌓는 수밖에 없다.
신뢰의 승계에는 무대가 필요하다
그래서 창업자의 마지막 역할은 지분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무대를 넘기는 것이다. 후계자가 거래처 앞에 서고, 어려운 결정을 직접 내리고, 작게 실패하고 회복하는 경험을 창업자가 살아 있는 동안 하게 해야 한다. 창업자가 모든 문제를 대신 풀어 주는 회사에서 후계자는 영원히 '사장님 자녀'로 남는다. 물려줄 것은 주식이 아니라 신뢰이고, 신뢰는 서류가 아니라 시간으로만 이전된다. 승계 설계에 세무 일정표만이 아니라 신뢰의 이전 일정표가 함께 있어야 하는 이유다.
본 칼럼은 일반적인 경영·승계 관점을 다룬 것으로 개별 사안에 대한 자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