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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엘칼럼

장남이 아니어도 된다 — 능력이 순서를 이기는 순간

60세 이상 오너 비중이 절반에 육박하는 지금, "장남이니까"라는 관행이 오히려 회사를 흔들 수 있다. 경영권과 재산권을 분리해 형평을 지키는 설계가 다음 세대를 지키는 길이다.

정엘 편집국 · 2026-07-12

"장남이니까 물려받아야죠." 그 한마디에 32년간 회사를 일군 창업주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정작 회사 매출의 상당 부분을 만들어낸 건 둘째 딸이었다.

가업승계를 준비하는 오너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질문은 세금이 아니다.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가"다. 그런데 이 질문 앞에서 많은 오너가 자신도 모르게 답을 정해놓는다. 장남, 혹은 맏이. 순서가 곧 자격이라고 믿어온 세월의 관성이다.

이 관성은 이제 더 안전하지 않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 대표이사의 60세 이상 비중은 44.8%에 이른다(중소기업중앙회, 기업승계 실태조사). 앞으로 5~10년 안에 절반에 가까운 기업이 승계의 갈림길에 선다는 뜻이다. 이 시점에 "장남이니까"라는 이유만으로 경영권을 넘기면, 회사의 존속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상법 제382조는 이사 선임을 주주총회 결의로 정하도록 규정할 뿐, 상속 순위나 출생 순서를 경영자 자격 요건으로 두지 않는다. 즉 법적으로 "장남 승계"는 관행이지 의무가 아니다. 오히려 상속세및증여세법 제18조의2(가업상속공제)는 가업상속공제(10년 이상 경영한 중소·중견기업의 주식 등을 상속할 때 최대 600억원까지 상속세 과세가액에서 공제해주는 제도)를 받으려면 상속인이 상속개시일 전 2년 이상 가업에 종사했는지를 요건으로 삼는다. 세제 혜택조차 혈통이 아니라 실제 경영 참여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가상의 예시를 들어보자.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A대표는 장남과 차녀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장남은 해외 지사에서 영업을 담당하지만 실적은 평이했고, 차녀는 국내 본사 신사업 부문을 맡아 3년 만에 매출을 두 배로 키웠다. A대표가 관행대로 장남에게 지분과 경영권을 모두 넘겼다면 어땠을까. 반대로 차녀에게 경영권을, 장남에게는 비상장주식 평가액에 상응하는 재산과 이사회 감사 역할을 배분했다면 어땠을까. 후자를 택한 A대표는 두 자녀 모두에게 "내 몫이 있다"는 확신을 남겼다.

여기서 갈림길이 생긴다. 준비된 오너는 경영권과 재산권을 분리해서 설계한다. 경영 역량이 검증된 자녀에게는 의결권 있는 주식과 대표이사 자리를, 비경영 자녀에게는 배당우선주나 부동산·금융자산 등 재산적 가치로 형평을 맞춘다. 방치된 오너는 "장남이니까", "장녀니까"라는 관행에 기대다가 갑작스러운 건강 이상이나 상속 개시 이후에야 형제간 분쟁으로 치닫는다. 유류분(상속인이 법률상 최소한 보장받는 상속분, 민법 제1112조 이하)을 침해하는 배분은 상속 개시 후 소송으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승계자 선정 전 점검 체크리스트

  • 자녀별 최근 3년 경영성과(매출, 이익, 신규계약 등)를 객관적 지표로 정리했는가
  • 비경영 자녀에게 배분할 재산(배당우선주·부동산·금융자산)을 별도로 설계했는가
  • 가업상속공제 요건(상속개시 전 2년 이상 가업 종사, 상속세및증여세법 제18조의2)을 확인했는가
  • 유류분(민법 제1112조 이하) 침해 소지를 사전에 점검했는가
  • 이사회·정관에 경영권 승계 기준을 문서로 남겼는가

다음 주라도 늦지 않다. 첫째, 자녀별 경영 성과를 숫자로 정리해 놓는 것부터 시작하자. 둘째, 세무사·변호사와 함께 경영권(의결권 주식)과 재산권(배당·현금성 자산)을 분리하는 시뮬레이션을 한 번은 돌려봐야 한다. 순서가 아니라 준비가 회사를 지킨다. 오늘 정리한 원칙 하나가, 10년 뒤 자녀들의 관계를 지켜줄 것이다.

핵심 정리

Q. 장남이 아닌 자녀에게 경영권을 넘기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나요?
A. 아닙니다. 상법상 이사 선임은 주주총회 결의 사항이며 출생 순서는 요건이 아닙니다. 다만 비경영 자녀의 유류분(민법)을 침해하지 않도록 재산 배분을 사전에 설계해야 상속 이후 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

자료: 중소기업중앙회, 국세청,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본 기사는 일반 정보 제공 목적이며 개별 사안에 대한 세무 자문이 아닙니다.